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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수 김백근의 삶] 목감천에서 만난 게






장마라더니 비가 정말 무섭게 내린다. 목감천은 넘칠 듯 출렁이고, 작물은 쏟아지는 비에 맥을 못친다.

쓰러진 작물을 세우고, 논과 밭에 물을 빼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비가 잦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 위에 민물 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아직도 목감천에 게가 살고 있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자 몸을 한껏 세우고는 집게를 하늘 높이 쳐든다. 기세가 등등하다.

손으로 잡자 입에 게 거품을 물고. 연신 허공을 향해 집게를 휘두른다. 힘이 보통이 아니다.


'요놈 봐라. 손바닥만 한 게 까부네. 콱 라면 끓이는데 넣어서 먹어버릴 까보다.'
이놈을 보니, 비가 오고 나면 친구들과 농수로에 가서 뜰채로 미꾸라지를 잡던, 기억이 떠오른다.

미꾸라지를 잔뜩 잡아서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풀고 거기에 깻잎과 고추를 넣어 추어탕을 끓였다. 아버지는 동네 친구분들을 불러 소주를 드셨다.

미꾸라지를 닦는 것은 내 몫이었다. 굵은 소금에 미꾸라지를 넣고 싹싹 비비면 하얀 거품이 생겼다. 발광하던 미꾸라지는 거품이 가라앉든 서서히 몸부림이 잦아들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 맡았던 추어탕의 구수한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는데. 참 오래전 이야기다.

손에 있는 이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게와 배가 하얗게 닳아 있다. 꼭 흙이 박힌 농부의 손톱과 비슷하다. 이놈은 어디서 살다 빗물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을까?

혹시 같이 살던 가족과 친구 곁에서 혼자 떨어진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때 미꾸라지를 같이 잡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즐거운 추억만 남기고, 삶의 빗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난 친구들.

이제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흘러온 것 같다. 이젠 또 어디로 흘러갈까?

기세등등한 낮선 게의 몸부림. 나도 살기 위해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을까?

아니면, 거품 꺼지듯 잦아들어 빗물에 몸을 맡기고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놈을 놓아주며 돌아오는 길. 아버지와 같이 먹던 추어탕 속 미꾸라지의 잔가시가 입안에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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